< 내 생의 봄날은, 당신 >


01.jpg        02.jpg

 

봄이 오는 길목에 자리잡은 남도의 섬 노화도.
그곳에 66년을 한결같이 사랑하며 살아온 부부가 있다!
농사에 장사에 손이 닳은 억척 할매 김재임(86세) 할머니와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의외의 로맨티스트 박응철(85세) 할아버지!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부부에게 봄은 늘 분주한 계절이었다.
그런데, 이제 더는 일 못하겠다, 파업선언한 할아버지!
덕분에 부부의 밭은 쑥대밭이 됐고,
할아버지는 쑥 캐러 갔다가 민들레 한 송이 꺾어다 주는 로맨틱 베짱이가 됐다.  
그런 변화에 할머니는 화가 나면서도 저를 두고 떠날 것 같아 애가 타는데...
해가 갈수록 떨어지는 기력에 마지막을 준비해야겠다는 할아버지와
그럴수록 더 활기차게 지내야 한다며 밭으로, 장으로 남편을 끌어내는,
우리 조금만 더 함께하자는 할머니.
봄볕 같은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평생을 살아왔던 부부.
이제 그 봄날도 끝에 다다른 걸까?

고된 삶도 당신이 있기에 언제나 봄날 같았다는,
소박하지만 찬란한 노부부의 봄 이야기를 만난다.

03.jpg        04.jpg


# 노화도 춘계 농사 전쟁, 응철 할배와 재임 할매의 쑥대밭 사랑
전라남도 완도읍 노화도의 작은 농촌마을 등산리. 이곳에 66년을 한결같이 사랑하며 살아온 노부부가 있다. 억척스럽지만 작은 일에도 감동받는 소녀 같은 86세, 김재임 할머니와 언제나 묵묵히 아내를 챙기는 연하남 85세 박응철 할아버지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부부에게 봄은 늘 가장 분주한 계절이다. 한 해 농사도 준비하고, 지천으로 올라온 쑥이며 달래도 캐야 한다. 그런데 올 봄은 다르다. 더는 힘들어서 농사 못 짓겠다며 응철 할아버지가 파업을 한 것! 다른 건 몰라도 밭을 갈려면 할아버지 힘이 꼭 필요한데, 할아버지가 손을 놓으니 밭은 쑥대밭이 된 지 오래! 일하고 있으면 어슬렁 다가와 돕는 시늉은 하는데, 그것도 잠깐! 뭐 좀만 시켜도 힘들다 죽겠다 해대니 부지런한 할머니 눈엔 여간 미운 게 아니다. 하지만 남편은 눈치가 있는지 없는지 쑥 좀 캐오라니 선물이랍시고 꽃이나 꺾어온다. 그런 남편이 귀엽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할머니는 요즘 속이 시끄럽다.

05.jpg        06.jpg

 
# 고생 징허게 했어도 당신잉게 살았제
5일에 한 번 돌아오는 장날이면 부부는 그간 농사지은 것들을 싸들고 읍내 장터로 향한다. 벌써 66년째 지켜온 일상. 이제는 쉴법도 한데, 평생의 습관이라 재임 할머니는 기어이 장터로 나서고 만다. 파업 선언한 할아버지도 이날만큼은 군말 없이 아내 뒤를 따른다.
가난한 살림에 9남매를 키워야 했던 부부. 젊은 시절에는 늘 새벽별 보며 들에 나가 달이 뜨도록 일해야 했다. 그나마 장날에나 물건 팔며 사람도 만나고, 핑곗김에 술도 한 잔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과 시댁 식구들로 북적이는 집을 떠나 부부 둘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니... 아무리 일하기 싫어도 그 추억 많은 장터를 떠나기란 쉽지 않다.
사실 장사에는 영 소질이 없다는 할아버지. 그래서 장사보다는 아내 보필을 맡고 있다는데. 할머니가 앉을 의자를 찾아다니고, 엉덩이 시리다는 한 마디에 또 그 위에 깔 상자를 찾아다니고, 할머니가 친구 만나러 간 사이 자리를 지킨다. 불평 한 마디 없이, 그림자처럼.
비오는 날 마을회관에서 놀고 있자면 슬그머니 우산을 두고 가고, 일 안 한다 하면서도 결국은 곁에서 채소를 다듬어주는 남편. 한땐 가난에 지쳐 밉기도 했지만 그런 남편이라 66년을 함께할 수 있었다. 

07.jpg        08.jpg


# 끝은 다가오는데, 당신이 마음에 걸려
요즘 들어 할머니는 걱정이 많아졌다. 할아버지의 잠이 늘었다는 것. 일도 안 하려고 하고, 잠깐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저 잠만 자고 싶어한다. 한 해 사이 유난히 기력이 떨어진 남편 모습에 할머니는 애가 탄다. 그러다 나 혼자 두고 갈라하요! 몇 번이고 다그쳐도 그뿐이다. 노인회관 한 번 다녀올래도 맘이 불안해 몇 번이고 잠자지 말라 당부한다.
아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할아버지는 점점 자신이 없다. 기력은 쇠하고, 몸도 맘도 예전같지 않다. 그래서일까, 자꾸 아내에게 못해준 것들이 생각난다. 평생 일만 하느라 글을 배우지 못한 아내. 몇 번이나 가르쳐달라는데도 그걸 못해줬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전화 한 번 걸려 해도 할아버지 도움이 필요하다. 어쩌면 혼자 남게 될 아내를 생각하니 그게 특히 후회가 된다는 할아버지. 아내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는데... 

09.jpg        10.jpg


# 당신과 나와, 조금만 더, 이 봄날을
가난만 벗어나면, 아이들만 다 키우고 나면 봄날일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 곁에 있는 당신이 봄볕이었고 봄꽃이었다. 부부는 다시 봄날을 맞았다. 더는 농사도, 장사도 여의치 않겠지만, 봄의 끝은 지는 꽃이라는 걸 알지만, 곁에 있어주는 이의 소중함을 안다.
함께 작은 텃밭이나마 가꾸고, 때로는 햇살 아래 산책을 나서고, 글공부도 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올해 봄도 할 일이 많다.  

 

66년 세월 속에 단단하게 여문 노부부의 사랑
그 소박하지만 찬란한 봄 이야기를
3월 29일 (화) 밤 11시 5분 OBS <멜로다큐 가족>에서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