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과 풍요의 한가위. 전라남도 곡성 능파리 마을에는 따뜻한 삶의 이야기와 고소한 향기로 풍성한 곳이 있다

바로 간판 하나 없이 담벼락에 아무렇게나 쓴 듯한 ‘방앗간’이란 세 글자가 전부인 능파리 방앗간이다 .

할아버지부터 3대로 이어진 방앗간을 지키는 이는 어머니 정봉덕(85)씨와 아들 강칠수(56)씨 아내 정명자 (52) 부부이다.

그 시작이 언제부터인지도 알 수 없는 능파리 방앗간에는 참기름 짜는 꼬순내와 함께 사람 살아가는 정이 살아 있다.

열일곱 처녀가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도 찾아오는 곳 자식 생일 떡 마련을 위해 빗길을 한 시간 이나 걸어서 찾는 곳 손님과 주인의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하는 곳이 바로 능파리 방앗간이다.

그 의리의 세월과 부모의 정성 가득한 마음을 알기에 이곳 주인장 칠수씨는 손을 놓지 못한다.

지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능파리 방앗간의 자랑은 바로 수동 기름틀이다.

칠수씨가 편리한 기계 대신에 번거롭고 수고로운 기름틀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다.

잊혀져가는 옛것을 지켜간다는 자부심과 그가 짠 참기름 맛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배의 손이 가는 기름틀 때문에 고생스러운 것은 아내와 어머니다.

 자식이 조금은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의 팔순 노모는 이제는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종종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뒤에서 묵묵히 그를 도와주고 있는 이들도 바로 어머니와 아내이다.

가족이 있기에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칠수씨의 이야기와굳이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정을 나누며 가족처럼 살아가는 능파리 방앗간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방 송: 2014년 9월 9일(화) 밤 11시 05분

 

#1. 능파리 방앗간에는 세월이 있다~

전라남도 곡성의 조용한 시골마을 능파리. 추석을 앞두고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이 수레에 쌀이며, 고추, 깨를 싣고 마을 골목길로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가 보니 일반 가정집처럼 보이는 담벼락에 ‘방앗간’이라는 세 글자만이 쓰여 있다. 이곳이 바로 아는 사람만 안다는 3대를 이어 온 능파 방앗간이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서로 일을 돕는 이곳의 진짜 주인은 막내아들 강칠수씨이다. 칠수씨가 방앗간을 이어받아 온 지도 벌써 30년.

칠수씨의 방앗간 인생을 함께 한 수동 기름틀은 칠수씨의 가장 큰 자부심이다. 자동 기계보다 손이 더 많이 가고, 양도 적지만 그 맛은 따라 올 수 없다고 말한다.

칠수씨가 방앗간을 운영한 기간보다 더 오래전부터 다닌 손님들은 옛 맛을 잊지 못하고 이곳을 찾아온다. 그럴 때면 아무리 편한 기계가 나와도 오래된 수동 기름틀로 기름을 짜며 옛것을 지켜나간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기도 한다.

 

#2. 능파리 방앗간에는 어머니의 情이 담겨있다

능파리 방앗간은 날씨가 좋은 날도 궂은 날도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방앗간을 찾는 손님들의 대부분은 바로 우리네 부모님이다. 멀리 떠나 있는 자식을 위해

한해 농사한 고추며 깨를 고스란히 들고 오는 어머니들.

번잡한 시간을 피하기 위해 이른 새벽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오는 일도 다반사

굽은 허리도, 먼 길도 마다않게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자식들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다.

빻고, 찌고, 짜내고 바구니 가득 이고 지고 가는 것들은 타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낼 것들이다. 이곳 주인장 칠수씨는 그 마음을 알기에 떡 하나 찌는 것도 참기름 한 병 짜내는 일에도 정성과 마음을 담아낸다.

손님 주인 구분 없이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찾아 해 내는 곳.

능파리 방앗간 칠수씨에게는 이곳을 찾은 이들 모두가 어머니이고 아버지이고 가족이다

 

#3. 나를 지켜 주는 힘! 가족

칠수씨의 자부심 수동 참기름 틀은 함께 일하는 가족들에게는 고생스러운 일이다

가마솥에 불을 지펴 깨를 볶고 일구는 일은 팔순이 넘은 노모의 몫

신음이 절로 나오지만 어머니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할까’하면 늦은 밤까지 일손을 놓지

못한다. 그래서 늘 죄송스러운 칠수씨.

늦은 밤, 어머니 방에 들어가 무릎을 주물러 주는 칠수씨

아들 때문에 평생 일만 하다며 투덜대는 어머니도. 칠수씨의 손길에 아픈 것이 다 나았다며

행여, 불편할 아들의 속내를 보듬어 준다.

그리고 칠수씨에게 고마운 또 한 사람은 바로 아내이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궂은일에

걸음도 제대로 못 걷게 된 아내에게 미안한 칠수씨 아내를 살갑게 챙긴다.

이십대 청춘을 시골 방앗간에 바친 칠수씨~

그가 어떤 일에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한결 같이 방앗간을 찾아와 주는 손님들과

묵묵히 뒤에서 그를 지원해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